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2020. 3. 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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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두 번은 없다> 중에서

 

이 시를 읽으면서 덤덤한 문체가 나의 가슴 한켠을 뜨겁게 하는 것을 느꼈다. 한 번 뿐인 인생 부딪혀보자,라는 다짐이 들게 하면서도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나를 흔드는 시 한 줄>이라는 책에서 문정희 시인은 쉼보르스카를 이렇게 소개한다.

'두 번은 없다' 이 시를 쓴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는 미당 다음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996년 노벨 문학상을 그녀에게 안겨주면서 모차르트처럼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웅장함을 겸비한 시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명징한 언어. 절제된 표현으로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금세기의 거장. 하지만 한없이 수줍은 은둔의 시인이 사는 크라쿠프를 여행하며 나는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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