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 01:13ㆍ책
올해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책은 단연 '힐링 에세이'이다.
대표적인 힐링 에세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는 몇달간 베스트셀러 종합 1위 자리를 지켰다.
치열한 경쟁에 지친 마음을 글로나마 위로받고 싶은 심정때문에 사람들이 힐링 에세이를 찾는 것이 아닐까싶다.
하얗게 불태웠다, 번아웃 상태 등의 말을 사람들이 자주 한다. 어쩌다 우리는 자신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었을까.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라는 책을 통해 현대사회의 긍정성 과잉 이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생각은 더 빠르고 생산적인 주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성과사회는 긍정성을 선호한다.
때문에 우리는 불가능이란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와 같은 긍정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결국 스스로에게 무한정한 긍정을 강요하게 된다.
무한정한 긍정은 자기 착취로 이어지고 우리는 끝내 지쳐버리고 만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이성적인 긍정성 rational positivity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피로의 문제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임을 깨닫고 함께해야 한다.
'피로사회' 발췌
<신경성 폭력>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서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12pg
긍정성의 폭력은 적대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확산되며 그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보다도 눈에 덜 띈다. ...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privativ하기보다 포화saturativ시키며, 배제exklusiv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exhaustiv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21pg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Gehorsamssubjekt"가 아니라 "성과주체Lestungssubjekt"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23pg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24pg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 -25pg
알랭 에랭베르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 규율적 행위 조종의 모델이 만인에게 자기 주도적으로 될 것, 자기 자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규범으로 대체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 그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만다." -26pg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28pg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29pg
<보는 법의 교육>
전반적인 가속화와 활동과잉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분노Wut하는 법도 잊어가고 있다. ...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50pg
분노는 예외적 상태이다. 세계가 점점 더 긍정적으로 되어가면서 예외적 상태도 더 줄어든다. ... 오늘날 사회의 전반적인 긍정화는 모든 예외 상태를 흡수해버린다. 그리하여 정상 상태가 전체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51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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