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든 시 한 줄 - 정재숙

2020. 3. 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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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임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화, <흔들리며 피는 꽃>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겨울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금 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김남조, <생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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