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2. 14:26ㆍ책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불가리아 태생의 유대계 영국 작가)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 또 얼마나 무익한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 하더라도? 냉소주의와 사랑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화, 19pg
“어쨌든 진지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안 믿는다고 대답할 거예요. 하지만 그게 반드시 사람들의 진실한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일 뿐이거든요. 사람들도 사랑을 믿지만, 그렇게 믿어도 되는 상황이 오기 전에는 아닌 척해요. 가능하기만 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냉소주의를 던져버릴거에요. 하지만 다수는 그럴 기회를 결코 얻지 못하죠.” –이면의 의미, 35pg
나는 클로이에 대해서 좀더 알아내야 했다. 어떤 거짓 자아를 채택할지 알아야 진짜 자아를 버리든지 말든지 할것 아닌가. …… 첫 코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멍청하게도 인터뷰를 하듯이 무거운 질문들을 던졌다. 아무데서나 살 수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까? [“여기도 괜찮아요. 헤어드라이어 플러그를 바꿀 필요가 없는 데라면 아무 데라도 좋아요.“] 주말에는 주로 뭘 합니까? [“토요일에는 영화를 보고, 일요일에는 저녁에 우울해지면 먹을 초콜릿을 쟁여둬요.”] 그런 서툰 질문들 …… 배후에는 가장 직접적인 질문으로 다가가려는 초조한 시도가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그리고 그것과 연결되는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 그러나 그런 직접적인 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진정성, 45pg
침실의 철학자는 나이트클럽의 철학자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존재이다. 그 두 영역에서는 육체가 두드러지고 또 그만큼 상처받기도 쉽기 때문에, 정신은 말없이, 개입 없이 판단을 내리는 도구가 된다. 생각이 배신행위가 되는 것은 그것이 프라이버시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생각이란 판단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판단이라고 하면 무조건 부정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편집증적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 57pg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 매우 온전해 보이고 ㅡ 육체적으로 온전하고 감정적으로 “통합되어” 보이고ㅡ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우리 내부에 부족한 데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지만, 상대에게서도 비슷하게 부족한 데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답을 찾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자신의 문제의 복사본만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70pg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이런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72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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