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인턴 면접 경험기

2019. 1. 3. 01:05잡다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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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월 초 6개월간 준비한 CFA Lv.1 시험이 끝났다. 

2019년은 인턴을 하며 실무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채용공고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곳에 이력서를 보내고 4번의 인터뷰를 볼 기회를 얻었다.

첫 번째 인터뷰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헤지펀드 자산 운용사였다. 

'이력서에 엑셀을 잘 사용한다고 쓰셨는데, 실무에 사용될 엑셀 함수 중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함수 세가지와 그 단축키를 말해주세요.'

'어... 제가 회계를 하면서 엑셀로 예산사용내역을 정리한 경험이 있는데요. 사실 그렇게 복잡한 함수는 잘 모르지만... VLOOKUP이랑 SUM 함수를 자주 쓴 것 같아요... 단축키는 써보지 않아서 잘... '

'CFA 공부를 최근에 하셨다고 써있는데 그럼 회사가 감가상각비를 타면 balance sheet, income statement, cash flow statement 이 3가지 재무제표에 각각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말해주실래요?'

'네! 회사가 감가상각을 타면요... ...'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으으-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카페에 손님은 나밖에 없었지만 점원이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이렇게 나의 첫 전화 인터뷰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 경험을 통해서 작은 회사들은 인턴을 트레이닝 할 여력이 안되기 때문에 바로 실무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2.

다음 면접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업계에서도 꽤 인정을 받는 IT 스타트업 회사였다. 

처음에는 구글, 아마존, 오라클에서 일을 하던 한국인 직장인들이 실리콘 밸리에 창업한 스타트업이라는 점에 끌렸다.

서류전형 합격 이메일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저희 Business Intern 포지션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시에 한시간 동안 인터뷰 하시고, 경우에 따라 원격으로 한시간 추가 인터뷰 있을 있으니 일단 2시간 비워두시기 바랍니다. 준비물은 따로 없고 복장은 최대한 편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스타트업은 면접 스타일부터 다르구나 생각했다.

이메일을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회사에 대해 알아보니 비즈니스 모델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리라. 다짐을 하고는 회사에 대한 조사부터 나의 실무경험과 강점, 예상 질문까지 열심히 준비를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2시간 전에 도착해, 건물 1층 카페에서 면접 연습을 했다.

신사역 부근의 빌딩이라 그런지 카페에서는 직장인들이 사업에 대해 열심히 토론 중이었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8층에 도착했고, 나는 작은 세미나룸으로 안내를 받았다.


자기소개를 한 후에 처음 받은 질문에 나는 당황을 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회사 아시죠? 7분의 시간을 드릴테니 그 회사의 1년 매출이 얼마일지 생각해보시고 보드에 매출 산출 과정을 써주세요.'

회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갔더니 뜬금없이 배달의 민족 이라니.

나중에 알고보니 이런 류의 질문은 비즈니스 인턴직의 단골 면접 질문이라고 한다. 

정확한 숫자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논리적으로 사고를 하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다.

내 나름대로의 매출을 산정하니 10억이라는 말도 안되게 작은 숫자가 나왔다.

'자- 배달의 민족 1년 매출은 사실 저것보다 훨씬 커요. 10배, 아니 100배가 넘는 금액이죠. 1000억 정도라고 생각합시다. 그렇다면 면접자분의 논리에서 어떤 부분을 고치면 될까요?'


이때부터는 면접이 재미있어졌다. 

인턴직에 붙기 위해 면접을 본다는 느낌보다는 이 사람과 흥미로운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두번째 질문 역시 첫번째 질문과 같은 맥락이었다.

'당신은 BBQ 치킨집 사장입니다. 1000만원을 지불하고 배달의 민족 어플에 광고를 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배달의 민족 어플은 얼마나 많은 클릭수를 받아야 당신이 낸 1000만원의 값어치를 하는 것일까요?'

첫번째 질문과 같은 논리구조로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질문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면접관은 나의 논리구조에 이어 follow up 질문을 해주었다.


이외에도 나의 이력서와 맡게 될 업무에 관련된 여러 질문을 1시간 반 가량 답했다. 

사실 질문에 답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나는 회사의 서비스에 대해 궁금한 점,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등에 대해 질문하면서 회사에 대해 더 알아갔다.

그렇게 답한 것보다 얻은 것이 많은 면접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질문은 받았다.

"회사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저에게 2가지 질문을 할 기회를 드릴께요."

면접 중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은 채, 나는 진심으로 물었다.

"저는 아직 학생이라 업계에서 일하는 분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IT 스타트업계의 프런트에 계신 인생선배님으로서 저에게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이 회사에 인턴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2시간동안 정말 많은 것을 얻었으니 그걸로 만족해! 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마치고 회사 빌딩을 나왔다.

1주일 뒤 아쉽게 최종합격을 하지 못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실망스러운 마음이 컸지만, 돈으로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3.

세번째 면접 역시 IT업계의 스타트업 회사였다.

이 회사는 2년 전부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제공하는 서비스가 나의 관심사나 가치관과 잘 맞았고, 보수와 상관없이 이 회사에서 일한다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중순 Linked In 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이 회사에서 올린 New Business Intern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게시된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공고였다.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정말 달랐다. 

이전에는 인턴이라는 경험을 위해 지원한 것들이지만, 이 회사는 내가 예전부터 정말 일해보고 싶었던 곳이다.

제출서류는 영문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나는 학교 도서관 구석에 자리를 잡고 파워포인트를 열었다. 이 회사가 여태껏 본 적 없는 자기소개서를 만들어보자.

회사의 성격을 고려하여 디자인을 하고, 회사의 로고색깔을 사용한 탬플릿을 만드는 등 눈에 띄는 10장짜리 자기소개서를 만들기 위해 하루 전체를 보냈다. 

독특한 디자인의 자기소개서가 비형식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형식을 잘 갖춘 레주메를 첨부했다.


이 스타트업 회사 역시 면접 방식이 남달랐다.

면접일 이틀 전, 서류전형 합격 이메일이 왔다. 

New Business팀 Intern 포지션에 지원해 주신 것을 감사 드리며,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음을 알려 드립니다.

1. 우선 인터뷰 가능한 시간대 1시간을 지정해 주세요. 
 2. 첨부한 사전 인터뷰 과제를 확인하여 주시고, 인터뷰 전까지 이메일로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인터뷰 요청 일정이 굉장히 촉박하고, 그 중간에 사전 과제까지 요청 드림을 양해 부탁 드립니다.

사전 과제는 회사의 글로벌 신사업 아이템을 기획하고 영어 발표를 하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회사구만... 기왕 이렇게 된거 제대로 해보자!

나는 사업아이템으로 모바일 앱 개발을 선정하고,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발표는 보여지는 것이 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디자인에 힘을 썼다. 


이번에도 면접 2시간 전에 회사 근처에 카페에 자리를 잡고 면접 연습을 시작했다. 

정각에 회사에 도착하여 인사 담당자분께 연락을 드렸다. 



회사의 내부 모습은 드라마에서만 보던 스타트업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 설레였는지도 모른다.

회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업무 공간은 매우 오픈되어 있었다. 

면접장소로 이동을 하는데, 회사 식당으로 추정되는 곳에 직원들이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데 직원분들 중 한분이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 원래 이러지 않아요! 으하하-"

알고보니 이날은 회사 연말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연말파티 다음날에는 회사 전체를 셧다운하고 직원들에게 휴가를 준다고 한다.

더욱 가고 싶다 이 회사.


면접실에는 두 사람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사업 본부장님은 후드티에 힙합모자, 신사업부 팀장님은 조끼패딩에 편한 바지. 

편안한 분위기에서 면접은 진행되었다. 

나는 15분간 준비한 발표를 했고, 사업 아이템에 대해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왜 스타트업에 일하고 싶어요?"

아싸- 준비한 질문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목소리가 떨리는지. 천천히 음료수 마시면서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마지막 질문은 그 전 스타트업 회사 면접질문과 동일했다.

"회사나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나요?"

이럴 줄 알고 멋진 답변을 준비해두었지.

"이 회사가 현재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요?" 

나는 당신들의 문제에 관심이 있고, 함께 해결하고 싶은 사람이다 라는 의지를 피력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1시간 가량의 면접이 끝나고 면접실을 나서는 두 분이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었네요. 다음에 또 뵈길 바래요."

회사를 나와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입가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다!



4.

오늘은 외국 컨설팅회사와 화상면접을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런던, 홍콩, 서울, 상하이, 도쿄 등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둔 글로벌 리서치 펌이다. 

이번에는 case interview 형식으로 1시간 동안 면접이 진행되었다. 

"고객의 이러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하나요? 절차를 나누어 설명해보세요."

결과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번 면접에서도 컨설팅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외국기업 면접은 나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이 회사와 잘 맞을지 면접관과 함께 상의해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 6시, 방금 세번째 스타트업 회사에서 신사업팀 인턴직에 최종합격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앞으로 3개월 간의 인턴생활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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